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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정보

그 무렵

by inhyuk9501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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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경시청 감사위원회가 재판부에 편지 한 통을 증거로 제출하자.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무죄판결이 날 것을 확신했다. 마지막 살인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작성된 그 편지는 울프의 수사 방식과 정신 상태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다. 편지를 작성한 익명의 수사관은 울프가 사건에 집착한 나머지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되어 있다며, 즉시 이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경찰이 칼리드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런던 경시청장과 수사국 차장은 부실 수라를 묵인했으니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 한편, 온갖 타블로이드 지는 울프 수사관이 원래 알코올 중독자이고 가정 폭력 때문에 이혼을 했다는 등의 스캔들 기사를 쏟아냈다. 재판 마지막 날의 변론은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검사와 변호사가 최후 진술을 했고,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몇 안 되는 유효한 증거를 간략히 설명했다. 배심원단은 평결을 위해 증인석 뒤에 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몇 주 전부터 어디에 표를 던질지 이미 결정한 사만다와 달리, 나머지 배심원단은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사만다는 다른 배심원에게 휘둘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배심장 스탠리가 주기적으로 투표를 실시했지만 몇 번을 해도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투표를 할 때마다 다수표를 얻은 쪽 사람 수가 늘어나자 소수 의견을 낸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뜻을 꺾었다. 마침내 5시간을 몇 분 남긴 상황에서 10ㄷ 대 2라는 투표 결과가 나왔다. 스탠리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 결과를 적어 서기에게 전달했다. 10분 후 돌아온 서기가 그들을 법정으로 안내했다. 사만다는 법정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또각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가 고요한 법정에 울려 퍼졌다.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서기가 침묵을 깼다. 피고인석에서 나기브 칼리드가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배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첫 번째 줄 끝에서 스탠리가 일어났다. "만장일치 평결이 나왔습니까?" "아니요." "다수가 동의한 평결이 나왔습니까?" "예, 나왔습니다." 판사가 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서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인 나기브 칼리드는 스물일곱 건의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사만다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숨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기대감에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의자가 삐걱거렸고.... "무죄입니다." 사만다는 칼리드의 반응을 살폈다. 칼리드는 얼굴을 손에 묻고 안도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함소리를 시작으로 일대 혼돈이 벌어진 것은. 울프가 단숨에 피고인석까지 몸을 날려 유리 칸막이 위로 칼리드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법정 경위가 대응할 새도 없었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 신음하던 칼리드는 인정사정없는 울프의 폭행에 꿈쩍도 하지 못했다. 울프는 칼리드의 갈비뼈를 걷어차고 주먹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무참히 공격을 퍼부었다. 법원 내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법정 경위들에게 얼굴을 맞은 울프가 배심원석까지 밀려나며 사만다와 함께 넘어졌다. 울프가 겨우 몸을 가누는 사이, 경위들은 피고인석 아래에 쓰러져 있는 칼리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위들로부터 두들겨 맞은 울프가 앞으로 휘청거렸고, 경위들은 그를 강제로 무릎 꿇리더니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칼리드는 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아직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울프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는지, 울프는 경위들의 속박을 풀고 기절한 남자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칼리드의 남색 수의는 이미 적갈색 피로 물들어 있었다. 울프는 경위가 떨어뜨린 묵직한 곤봉에 손을 뻗었다. 곤봉을 움켜쥐고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든 순간, 울프는 뒤에서 날아온 강한 일격에 나동그라졌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법정 경위 하나가 곤봉을 다시 사정없이 휘두르며 울프의 손목을 박살냈다. 이 모든 것은 무죄 평결이 나오고 불과 20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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