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 두손을 깍지 낀 자세로 노부히코는 말했다. "다카유키 군을 빼앗고 싶다면 그녀 나름으로 접근하면 될일. 상대는 몸이 불편한 아이야. 유키에가 그럴 마음이라면 도모미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테지." "당신, 그렇게 말하면 우리 도모미가 너무 가엾잖아요." "사실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야. 나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다카유키가 말했다.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다. "유키에 씨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든, 도모미 씨와 제 사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말에는 다카유키 자신이 예상한 이상으로 큰 반응이 있었다. 비디오의 임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전원의 표정과 움직임이 굳었다. 그리고 시간을 양쪽으로 가르는 듯한 공백이 있었다. 모리사키 부부가 그 눈에 깊은 슬픔을 담고서 딸의 전 약혼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랬겠지. 그렇고 말고." 아쓰코가 손가락 끝으로 눈가를 눌렀다. "다카유키 씨는 그랬을 거야. 아무렴, 그러니까 유키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도모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아마 유키에 씨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예요." 게이코가 말했다. "유키에 씨에게는 조금 전에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런 자신감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도모미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다카유키 씨의 마음은 도모미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착한 유키에가 그렇게 끔찍한 생각을 했다는 거니?" 아쓰코가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리며 말했다. "사랑은 맹목적인 거니까 말이지." 옆에서 진이 끼어들었지만 모두들 그 말을 묵살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얘기에는 사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증거랄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러니 어디까지나 사리 정연한 가설에 불과하지." 도시아키가 신중한 말투로 게이코에게 말했다. "어떻게든 그 증거를 찾으려고 여기 온 거예요."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도모미가 살해당했다는 가설을 전개한 것이군." "여러분에게서 새로운 사실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때 유키에 씨의 반응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땠는데? 네가 보기엔 역시 유키에가 도모미를 죽인 범인이라는 거야?" "모르겠어요. 모르겠지만 유키에 씨가 살해당한 일로 오히려 제 추리가 전혀 빗나가지는 않았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게이코가 도시아키에게서 다카유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키에 씨가 다카유키 씨를 사랑했다는 것도 그녀의 태도를 보면서 확신하게 됐고요." 다카유키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몹시 힘겨웠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너의 추리가 다 맞다고 치자. 도모미를 죽인 사람은 유키에였어. 그렇다면 이제 유키에가 왜 살해당했는지 설명해 봐. 하기야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지만." "네, 짐작하시는 그대로예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게이코가 미간을 찡그렸다. "복수죠. 도모미의 복수를 위해서 유키에 씨를 죽였을 거예요." 모리사키 부부는 숨을 삼켰고, 도시아키는 예상했다는 듯이 씁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얘기가 그렇게 돌아가겠지." 다카유키로서도 의외의 대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 외에도 도모미의 죽음의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게이코가 그렇게 말하자 기도가 그녀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아하, 본인 외에란 말이지. 범인은 당신이 아닌 누구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군." 게이코는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도모미를 사랑했던 사람 모두가 용의자일 수 있다는 얘기예요. 물론 저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조금 전과 정반대잖아. 도모미의 친족인 우리가 가장 혐의가 짙다는 말인데......" 도시아키의 말에 게이코는 미안하다는 듯이 다카유키를 보았다.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다카유키는 충분히 이해했다. "압니다. 저도 용의자의 한 사람이겠죠. 도모미를 위한 복수라면 제가 가장 의심을 사는 게 당연하죠."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게이코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조금도 사과의 뜻이 없었다. 다카유키는 그녀가 자신을 단단히 의심하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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