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미를 생각하고 있으려니 점점 눈이 말똥거렸다. 다카유키는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이고 베개를 위치도 바꿔 보았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자 가방에 넣어 온 위스키라도 마셔 볼까싶어 일어나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그는 문으로 다가가 "네." 하고 대답했다. "저에요. 유키에." 문을 열었다.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친 유키에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얼굴이 매우 창백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네, 저.... 목이 말라서 주스나 마실까 하고 부엌으로 내려갔는데..." 그녀는 한기가 드는지 카디건 앞자락을 여몄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누군가 사람이 있었어요." 마음을 굳혔다는 듯이 유키에가 말했다. 다카유키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게 누군데요?" 유키에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말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등이 서늘해졌다. "아쓰코 부인 아닙니까?" "아니에요. 남자 목소리였어요. 그것도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요." "남자...." 도둑인가,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별장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도둑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다. 보석이나 그림을 훔쳐 간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가 보죠." 방에서 나온 다카유키는 유키에 옆을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그녀도 뒤따라왔다.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다가가 보았지만 역시 말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다카유키는 유키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릴 리 없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부엌문에 귀를 대 보았다. 사람이 있는 기척은 없었다. 다카유키는 문손잡이를 잡고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잡아당겼다. 주방 안에는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요." "이상하네, 조금 전까지 틀림없이..." 부엌 안쪽에는 뒷문이 있었다. 다카유키는 그 문도 살펴보았지만 잠겨 있었다. 이상하다면 이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왜 여기에만 불이켜져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주방에서 나온 사람은 아쓰코일 텐데, 그녀가 깜박 잊은 건가. "왠지 으스스하네요." 유키에가 오싹하다는 듯이 팔을 비볐다. "그래도 도둑이 들어왔다면 흔적이 있을텐데요." 다카유키는 유키에의 손을 잡고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형광등이 일제히 꺼지면서 사방이 완전한 어둠에 갇혔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그의 왼팔을 잡았다. 놀란 다카유키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소리 내지 마."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움찍하면서 소리를 삼켰다. 유키에도 조그맣게 비명을 질렀다. "소리 내지 말라니까. 조용히 해." 남자가 다시 말했다. 다카유키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 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얼굴에 강한 빛이 비쳤다.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며 가까스로 상대를 보았다. 깡마르고 몸집이 작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수한 일본인이 아닌지 얼굴의 윤곽이 뚜렸하고 깊다. 남자는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뭐하는 놈이야, 뭐하러 온 거야?" 다카유키가 물었다. 그러나 상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별장에 지금 몇 명이 묵고 있나?" 반대로 상대가 질문했다. 다카유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서 유키에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쪽은 상당히 덩치가 컸다. "허튼짓하지 마." 다카유키가 말했다. "우리를 포함해서 여덞 명이 묵고 있다." "남자는 몇 명이지?" "네 명." 작은 남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좋아."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대로 걷는다." 다카유키와 유키에는 두 남자의 지시에 따라 라운지의 소파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작은 남자가 스탠드를 켠 후 덩치 큰 남자와 함께 다카유키와 유키에 앞에 섰다. 그리고 둘 다 총을 겨눴다. 덩치가 겨누고 있는 총은 라이플인 듯했다. 다카유키는 총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권총이나 라이플이 가짜 같지는 않았다. "다구. 여자를 감시해."작은 남자가 덩치에게 지시하고는 다카유키에게 일어서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남자에게 등을 떠밀려 다카유키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란히 있는 방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병장에서의 방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별장에서의 밤을 평온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묵고 있는 방이 어디지?" 남자가 물었다. "방을 전부 사용하고 있는데." "좋아.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해. 오른쪽부터 차례로." "오른쪽에서 첫 번째 방은 저 여자의 방이야." 다카유키가 아래층에 있는 유키에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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