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등을 살짝 펴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유키에 씨가 취직하지 않고 아버님 일을 거드는 것에도 찬성할 수 없고 말이죠. 전에도 말했지만, 일을 하는 이상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죠?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서 하는 말인데요. 우리 병원에서 일해도 괜찮습니다." 기도는 그 커다란 코의 한쪽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이 남자는 바로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네, 그래도 당분간은 아버지 일을 거들고 싶어요" 유키에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아쓰코가 요리를 가지러 주방으로 가는 것을 보고 그녀를 도우러 가는 듯했다. 기도는 그렇게 오래 공들여 복선을 깔았는데도 여지없이 퇴짜를 맞는 바람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시아키가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번 모임에 꼭 참석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했는데 그게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다카유키는 메부리코를 옆에서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다카유키 역시 유키에를 멋진 여자라고 느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크리스마스 날 밤이었다. 도모미와 둘이서 도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녀가 자기 사촌 동생을 초대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한 살 아래지만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처럼 자랐다. 별장에가서도 언제나 둘이 놀았고, 그 애랑 전에 한 약속이 있거든. 어느 쪽이든 애인이 생기면 크리스마스 날 밤에 소개하기로." 그렇게 말하면서 도모미는 어린애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야 상관없지. 그런데 갑자기 불러내도 괜찮겠어?" "물론이지. 바로 저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불러올게." 도모미는 윙크를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타난 유키에는 그 이름처럼 하얀 여자였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서 하얀 피부색이 더욱 도드라졌다. 키는 도모미와 비슷하지만 얼굴과 몸의 세부적인 곡선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이 집안 핏줄이 그런지 그녀 역시 도모미처럼 소녀 같은 순수함을 풍겼다. 도모미 같은 활달함은 없는 대신 차분한 몸짓을 보니 성격이 온순할 것 같았다. 유키에는 발레도 음악도 하지 않지만 감상하는 것은 좋아하는 듯했다. "왠지 내가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유키에가 그렇게 말하자 도모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룻밤쯤은 단둘이 있지 않아도 돼." 그 만남을 계기로 다카유키는 유키에의 아버지 시노 가즈마사와도 일과 관련해 인연을 맺게 되었다. 확원 자체적으로 비디오 교재를 만들어 사용하고 싶은데 제작해 줄 수 있겠느냐는 의뢰를 받은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협의하는 자리에 유키에가 참석한 적도 있었다. "이런 남자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다카유키는 기도의 옆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먼 친척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척은 친척이니 옛날부터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를 생각하면 기도가 이십대 시절에 유키에는 겨우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사이에 연애도 하지 않고 그녀를 향한 마음만 키워 왔다는 말인가,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집광적인 느낌이 드는 인상이라 혹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자 다카유키는 기분이 약간 상했다. 식사가 끝나자 남자들이 먼저 라운지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뒷정리를 끝내고 아쓰코와 유키에, 게이코도 술자리에 끼었다. 노부히코는 상대를 시모조 레이코로 바꿔 체스보드에 다시 말을 늘어놓았다. 다카유키는 도시아키의 제안으로 유키에, 게이코와 함께 포커를 하게 되었다. 아쓰코는 모두를 위해 술심부름을 했다. 기도는 뭘 하나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유키에 옆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유키에는 때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기도는 거기에 안도했는지 '유키에 기도 합동팀' 어쩌고 하며 주절거렸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게이코는 포커에 매우 강했다. 좋은 카드를 잘 집어 가는 것은 아닌데, 신중함과 대담함의 균형이 발군이었다. 단박에 그녀 앞에만 칩이 수북하게 쌓였다. "대단한 패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태연하게 승부를 걸기도 하고.... 이건 그저 포커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박에 상당히 재주가 있는거야." 칩을 상당량 빼았긴 도시아키가 포기한 듯이 말했다. "정말 그러네요. 난 표정에 다 드러나서..... 역시 겁이 많은가 봐요." 그렇게 말하면서 유키에도 카드를 덮었다. "유키에 씨가 겁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 게이코가 자신의 카드를 가슴 앞에 든 채로 말했다. "때가 닥치면 과감해질 수 있는 사람이야. 난 알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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