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구, 좀 오래 지켜봐야겠는데." 위에서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데, 화장실이야?" "비슷하지만 좀 더 좋은거야." 퍼뜩 놀란 다카유키는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진이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안 돼, 이거 놔!" 유키에가 외쳤다. 다카유키는 벌떡 일어섰다. "시끄럽게 굴지 마, 목숨까지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데서 꼼짝 않고 있어 봐야 따분하기만 하잖아. 당신도 싫지 않을 텐데." 진은 유키에의 팔을 꽉 잡고서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지마." 기도가 울음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내질렀다. "그만둬!" 다카유키도 소리를 질렀다.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해?" 진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해를 끼치는 일인가? 둘이서 재미 좀 보자는데, 하기야 뭐, 여자 쪽이 싫은 척하는 일도 있지만, 그건 처음에만 그렇지." "그녀를 놔줘" 유키에를 모욕하는 말에 분노를 느낀 다카유키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아까도 말했을 텐데, 누구에게든 해를 끼치면 유리창을 깨뜨리고라도 도망칠 거라고, 그래도 좋은가?" 진이 그의 기세에 약간 기가 눌린 듯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 마." 다구도 진에게 그렇게 말했다. "진이 여자와 하는 동안 이 사람들이 도망치면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된다고, 여자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안을 수 있잖아." 인질들과 파트너 양쪽이 공세를 펴자 진도 흥분이 싹 가신듯 피식 웃으면서 유키에의 팔을 놓고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깝군, 꽤 괜찮은 여자인데. 하지만 뭐, 서두를 건 없지,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의미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은 진은 다카유키는 밑에서 노려보았다. "부탁이 있는데." 그때 노부히코가 강도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방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없을까? 아내가 좀 추운 모양이야. 걸칠 거라도 가져왔으면 하는데, 못 믿겠으면 자네들이 가져다줘도 좋고." 그의 부탁에 두 강도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주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지, 뭐" 마침내 진이 말했다. "다구, 잘 지켜봐." 계단을 올라간 노부히코가 다구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진은 경계의 눈빛을 번뜩이면서 유키에에게 총을 겨눈 채 다카유키에게 물었다. "당신, 이 여자 애인인가?" "그 여자는 내 약혼자의 사촌 동생이야. 그러니 지킬 의무가 있지." "거참, 기특하군. 그래서, 그 약혼자라는 사람은 어느 쪽이지?" 그는 게이코와 레이코를 번갈아 보았다. 다카유키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도 아니란 말인가?" "그는 모리사키 도모미, 죽은 내 여동생의 약혼자 였지." 옆에서 도시아키가 다카유키 대신 대답했다. "흐음, 그랬군." 진은 호기심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다카유키를 보았다. 잠시 후 노부히코와 다구가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계단을 낼오려는 노부히코를 진이 불러 세웠다. "이 봐 거기, 잠깐 기다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 보시지, 의문스럽다고 했잖아." "아까 하던 얘기?" "교통사고 얘기 말이야. 진이 말했다. "당신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서? 그런데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했잖아. 그다음 얘기를 해 보라는 거야." "그다음은 없네." 언짢은 목소리로 말한 후 노부히코는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쓰코 옆에 가서 그녀의 어깨에 파란색 여름재킷을 걸쳐 주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까 당신 표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상당히 이상하던데."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져서 다소 이성을 잃었을 뿐이야. 자네들이 딸 얘기를 해서 흥분한 탓도 있고." "강도 따위에게 소중한 딸의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있겠나. 그런 뜻인가? 그래도 말이야. 당신이 한 말은 정말 이상했다고. 딸이 차를 타고 가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단순한 사고는 아니다...... 사고가 아니라면 대체 뭐라는 거지?" "그러니까 아까는 다소 혼란스러워서 그렇게 말했다고 하잖나. 딸은 사고로 죽었네. 그걸로 끝난 일이야. 왜 자네가 그런 일에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군." "그거야말로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해야겠지 도무지 따분해서 말이야." 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 지금까지 말없이 도시아키와 체스만 두고 있던 시모조 레이코가 일어나 노부히코에게로 가서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뭘 그렇게 속닥거리는 거야!" 진이 고함을 질렀다. "흐음, 그렇군." 노부히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자네들이 모리사키가의 내막을 캐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는군, 뭔가 약점을 잡으면 앞으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야. 잘하면 공갈 협박도 가능할 테고." 정곡을 찔렸는지 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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