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위협으로 여자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다구의 역할은 남자들 네 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카유키는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SOS' 라는 글자를 누가 지웠을까?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화장실에 갔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 세면대 옆에 비닐 호스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호스에 물기가 있다. 다카유키는 누군가 그 호스를 사용해 창문 밖으로 물을 흘려보냈음을 깨달았다. 문제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였다. 진이나 다구? 만약 그들이라면 잠자코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질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인가? 설마, 하고 다카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다카유키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옆에서 도시아키가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모 아니면 도, 도박에 나서 볼까 하는데." 다카유키는 고개를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도박이라니요?" 도시아키가 천장을 가리켰다. "이제 사방이 점점 어두워질 거야, 만약 정전이라도 되면 도망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정전?" 그런 방법이 있었군,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요?" "이 라운지와 식당의 조명은 하나의 차단기에서 전력이 공급될 거야. 그러니까 그 차단기가 내려지도록 콘센트 하나에 합선을 일으키면 되는 거지,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지. 아마 화장실 세면대 콘센트도 같은 차단기에 연결되어 있을 거야. 그걸 어떻게 해 보자고. "그런데 말이죠." 강도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다카유키가 말했다. 지혜의고리와 말발굽 퍼즐을 모두 해결했는지 다구는 따분한 표정으로 책꽃이를 바라보고있었다. 들새와 식물에 관한 책이 꽃혀 있지만 그는 그런 책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갑자기 불어 나가면 모두들 당황할 텐데요. 오히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알고 있어. 그러니까 미리 불이 나갈 시간을 정하면 되잖아." "어떻게요" "타이머를 사용할 생각이야." 도시아키가 대답했다. "내 방에 타이머가 있어. 겨울에 간혹 전기스토브에 부착하곤 하지. 그걸 이용해서 정해진 시간에 합선이 되도록 장치해 놓으면 돼." 과연 잘만 하면 성공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타이머를 어떻게 가져오죠?" "그건 내게 맡겨." 도시아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고개를 돌려 다구에게 말했다. "퍼즐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덩치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실은 나도 재미있는 퍼즐을 하나 아는데." "어떤거지?" 다구가 물었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성냥갑을 사용하는 거야." "성냥갑이라고?" 다구는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성냥 퍼즐은 질렸어." "성냥이 아니라 성냥갑을 사용한다니까. 바깥 상자와 속 상자를 맞춰서 만들지." "그래?" 다구가 바지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더니 도시아키 앞으로 던졌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찻집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어디 해 봐." 그런데 그걸 본 도시아키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이렇게 얇은 성냥갑은 안 돼." 주방에 좀 더 두꺼운 성냥갑이 있을 텐데. 그런 게 다섯 개 있으면 할 수 있지." "다섯 개나? 왜그렇게 많이 필요한 거야?" "규칙이 그러니까, 반드시 다섯 개를 사용해야 하거든." 다구는 잠시 의심하는 표정을 보였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듯 도시아키에게 명령했다. "그럼 가서 가져와 바." 그러자 도시아키가 천천히 엉덩이를 들면서 다카유키를 향해 슬쩍 한쪽 눈을 감았다. 그가 주방으로 들어서자 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뭐야, 넌?" 그리고 잠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냥갑 다섯 개를 들고 도시아키가 돌아왔다. "마침 좋은 게 있더군." "잔말 말고 빨리해 봐." 다구가 재촉했다. "이것만 가지고는 할 수 없어. 접착제나 풀이 있어야지." 도시아키가 그렇게 말하자 다구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또 왜 필요한데?" "성냥갑 다섯 개를 접착제로 붙여야 해. 내 방에 접착제가 있는데 가서 가져오면 안 될까?" 아하,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절묘한 방법이다. 다구는 또 망설이는 표정을 보였다. 도시아키를 혼자 가게 할 수는 없고, 다른 남자들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것처럼 도시아키가 말했다. "다 같이 가면 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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