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탓인지 몇 명이 일어나 화장실에 갔고, 그럴 때마다 다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동행했다. 그리고 7시가 다가왔다 다카유키는 머릿속으로 작전을 짜고 있었다. 대부분의 창문과 출입구 잠금창치를 철사로 돌돌 감아 놓았기 때문에 그곳들을 통해서는 쉽게 탈출할 수 없다. 유리창을 깨뜨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위험한 일이다. '주방으로 도망쳐 안쪽에서 문을 잠그든지, 아니면 정면으로 그들과 맞붙든지." 그러나 상대는 총을 갖고 있다. 흥분해서 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래. 주방으로 들어가도록 모두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다카유키는 그렇게 결정했다. 퍼뜩 고개를 들어 보니 모두가 수저를 내려놓은 채였다. 금방이라도 행동에 들어갈 태세다. 이런 기세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7시가 지나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카유키는 타이머의 시간이 조금 어긋났나 생각했다. 하지만 10분을 기다려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잠깐 실례해야겠군." 노부히코가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어이, 멋대로 움직이면 안 되지." 이번에는 웬일로 진이 동행했다. 몇 분 후 돌아온 노부히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마침내 도시아키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 내용이 아가와 게이코를 통해 다카유키에게 전해졌다. 타이머가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배신자가 있다. 라운지 구석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카유키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아무튼 이 중의 누군가가 이 사건의 해결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잠시 후 다키유키는 틈을 보아 타이머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노부히코가 말한 대로 타이머 코드가 뽑혀서 절단돼 있는 상태였다. 즉 수리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타이머가 정지된 시간을 보니 6시 34분이었다. 그 시간에 자리를 뜬 사람이 누구였을까.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카유키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다소 허탈한 상태에 빠져 있던 인질들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전화는 라운지와 식당을 가르는 칸막이를 겸한 간이 테이블 위에 있다. 진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아쓰코에게 총구를 겨눴다. "받아. 허튼소리는 지껄이지 말고." 아쓰코가 비틀거리며 간이 테이블로 다가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네, 모리사키입니다..... 아, 네. 늘 수고가 많으시네요.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송화구를 막고 남편을 돌아보았다. "여보, 이시구로 씨예요. 급한 용무라는데요." "우리 회사 전무일세." 노부히코가 진에게 설명했다. "좋아, 받아. 최대한 빨리 끊는다." 노부히코가 일어나 아쓰코로부터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전화 바꿨네. 무슨일이지?..... 음.... 아, 그 일이군, 잠시 기다리게." 그가 진을 보았다. "업무에 관해서 묻는데, 방에 서류를 봐야 대답할 수 있는 일이야." "내일 이쪽에서 전화하겠다고 해." "그건 곤란하네, 긴급을 요하는 일이라서 대답하지 않으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텐데." "그래?" 진이 파트너를 돌아보았다. 퍼즐에 거듭 실패해 좌절한 다구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를 꽤나 좋아하는 듯, 아침부터 몇 병째인지 몰랐다. "알았어, 2층에 올라가서 전화를 계속 받아. 다구, 이자를 따라가서 지켜봐.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하면 바로 전화를 끊어." "알겠어." 다구는 한 손에 맥주 두 병을 들고 라이플로 노부히코를 위협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노부히코가 2층 무선 전화기로 통화를 하는 동안 진은 아래층 전화로 내용을 엿들었다. 그런데 별 흥미로운 얘기는 아닌지 따분한 표정이 역력했다. 노부히코가 현재 상황을 상대에게 전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세상에는 거액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사람이 있군." 수화기를 내려놓은 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훔친 만큼의 돈을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듯이 씨 대고 써 대고 있어. 그런 차이가 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군." 그가 다카유키 앞으로 다가왔다. "당신, 저 양반 부하 직원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아. 일에 관해 신세를 지고 있지만," "흐음." 진이 다카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깝게 됐군. 만약 죽은 딸과 예정대로 결혼했으면 당신 인생도 술술 잘 풀렸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는 생각지 않으려고 해." 다카유키가 대답하자 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생각하지. 보통은. 사장님의 딸과 결혼하는 건데 말이야." 자신의 심정을 이런 남자가 알 리 없었다. 다카유키는 고개를 돌렸다. "이봐, 대답해 보라고. 그 딸이 죽어서 어느 쪽이 아까웠지? 여자의 목숨, 아니면 재산?" 다카유키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에 자기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다시 한 번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다카유키가 치켜뜬 눈으로 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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