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눈앞에 두자 이성을 잃은 것이다. 자신이 인질이 되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인식 때문에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잠깐, 후지. 너에게 말한다. 다시 한 번 아버지가 제안한 거래를 생각해 보지 않겠나? 구미가 당기기는 할 텐데." 도시아키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건 이미 끝난 얘기야. 당신네들이 후지의 신원을 눈치챈이상 살려 둘 수는 없어." "우리가 그걸 경찰에 얘기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버지도 말했지만, 시신을 가져가는 이상 우리도 너희가 잡히지 않기를 바랄거야. 우리 목을 스스로 조르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후지는 그 말을 못 믿겠다는 군. 믿을 만한 재료가 없다고 말이야." 대답은 진이 했지만 이제야 후지의 의사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었다. "재료가 없으니 그 거래에 응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도박이야. 도박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위험성이 높은 대신 얻는게 별로 없거든. 그렇다면 당신네들 모두를 죽이고 여기서 나가는 편이 훨씬 간단해." 그때 다구가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휘발유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수고했어." 진이 말했다. "후지, 어떻게 뿌리면 되지?" 다구가 물었다. 사소한 일 하나까지 지시를 받는 모양이다. "그래, 알았어. 라운지 주위에 죽 뿌리고. 그다음에 이 사람들에게 끼얹고서 불을 붙이라는 거지?" "그래야 확실하니까." 진이 그렇게 말한 직후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휘발유 냄새가 라운지를 가득 채웠다. "살려 줘!" 기도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줘. 후지. 아직 여기 있지? 내 얘기 좀 들어 보라고." 도시아키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미 늦었어, 포기해." "아무튼 들어 봐. 당신은 조금 전에 얻는 게 없다고 했어. 하지만 여기서 우리들 모두를 죽이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방법도 있잖아." 순간 정적이 덮쳤다. 곧이어 진이 "다구, 중지!" 라고 외쳤다 "무슨 거짓말을 하겠다는 거지?" 진이 물었다. "어떤 것이든, 범인은 한 사람, 키가 크고 젊은 남자 였다고 할 수도 있고. 외국인이었다고 증언할 수도 있어. 아무튼 너희들 쪽에 유리하게 거짓말을 해 주지." "잠깐 기다려 봐." 발소리가 식당 쪽으로 향했다. 도시아키의 제안이 강도들에게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듯했다. "이런 꼴을 당하고서도 그들을 비호하라는 말인가요?" 게이코의 물음에 비난하는 듯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살기 위해서야, 아까 아버지도 말씀하셨지만, 풋내 나는 의견은 듣고 싶지 않다." 그러니 두말 말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진이 돌아왔다. "애써 의견을 제시했는데 미안하군, 지금 상황에서는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겠어. 이번 살인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게다가 시신을 끌고 다녀 봐야 무슨 좋을 일이 있겠어." "하지만 우리가 살인 사건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건 알잖나." "그건 그렇지만.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약점을 쥐었다고 할 수는 없지." 도시아키는 말문이 막혔다. 그 틈을 노리듯 진이 덧붙였다. "단, 범인을 확실하게 밝혀낸다면 생각해 보기로 하지. 그렇다고 반드시 살려 준다는 약속은 할 수 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결과에 따라서 방침을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범인을 밝혀내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라는 말인가?" 노부히코가 숨이 막힌 듯 갑갑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을 주지, 한 시간이다. 그동안 당신네들끼리 토론을 하든 대화를 하든,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도록, 그러지 못할 경우, 아쉽지만 전원을 죽이겠다. 알겠나?" "그럼 범인이 누군지만 알면 살려 주는 건가요?" 아쓰코가 물었다. "결과에 따라서라고 했잖아" "알겠어요. 그럼 고백하죠. 유키에를 죽인 건.... 나, 바로 나에요." "뭐라고?" "어머니, 무슨 말입니까?" 모리사키 부자가 번갈아 외쳤다. "정말..... 정말이에요. 내가, 내가 유키에를 죽였어요."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다카유키는 이내 간파했다. 강도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범인임을 자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유키에가 살해당했을 시간에 그녀는 줄곧 진과 함께였다.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거짓말하지 마시죠, 부인." "아니야. 믿어 줘요. 내가 한 짓이야." "그럼 묻겠는데. 뜯어낸 일기장은 어디에 있지? 그걸 말할 수 있으면 범인이라고 인정해 주지." "그건..... 버렸어. 찢어서 화장실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 유키에가 도모미를 죽였다고." "호오. 그랬어? 그러니까 복수를 했다는 얘기군. 그럼 또 묻겠는데. 그 유키에라는 여자가 당신 딸을 죽였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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