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6 남자였다. 눈을 감지 못한 피해자는 참혹한 최후와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아닌가요?" 시몬스 경감은 울프가 있는 창가 쪽으로 돌아와 쪼그려 앉았다. 구릿빛 피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시몬스가 모르겠다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칼리드입니다." 울프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시몬스는 생명의 빛이 꺼진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의심은 점차 깊은 우려로 바뀌었다. "백스터!" 시몬스가 외쳤다. "애덤스와...." "에드먼즈요." "...벨마쉬 교도소에 다녀와. 교도소장에게 나기브 칼리드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해." "칼리드요?" 깜짝 놀란 백스터가 울프를 쳐다보았다. "그래, 칼리드. 확인해 보고 살아 있으면 당장 내게 전화하고, 어서!" 울프는 그가 살고 있는 건너편 아파트 동을 쳐다.. 2022. 1. 20. "애덤스는 어디 갔어?" "누구요?" "애덤스, 새로 온 네 후배 말이야." "에드먼즈요?" "그래, 에드먼즈."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에드먼즈!" 시몬스가 혼잡한 방에 대고 외쳤다. "너 요새 에드먼즈랑 같이 다니나 봐?" 울프가 질투를 숨기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 백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어린애 돌보기하고 있는 거죠, 뭐." 그녀가 속삭였다. "에드먼즈는 전에 재산범죄수사팀 있다 와서 시체도 몇 번 못 봤대요. 나중에 울지도 몰라요." 스물다섯쯤 돼 보이는 비쩍 마른 청년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불그스름한 금발이 헝클어지기는 했지만 옷차림은 비교적 말끔했다. 그는 당장 메모를 할 기세로 수첩을 펼쳐 들고 시몬스 경감을 향해 웃었다. "과학수사팀은 머래?" 시몬스가 물었다. 에드먼즈가 수첩을 몇 장 앞으.. 2022. 1. 19. "이런 사건을 놓친 걸 알면 챔버스 경사가 배 아파 죽으려고 하겠죠?" 백스터가 환하게 웃었다. "나라도 시체를 보느니 카리브 해로 크루즈 여행을 가겠다." 울프는 담담하게 말했다. 백스터가 놀라서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경감님 말 못 들었어요?" "무슨 말?" 백스터는 아파트 안으로 앞장섰다. 집 안은 미리 온 감식반원들이 손전등 열 몇 개를 꼭 필요한 곳에만 달아놓아서 무척 어두웠다. 복도에서 맡았던 냄새가 점점 전해졌다. 머리 위를 쌩쌩 날아다니는 파리 떼를 보니 악취를 풍기는 진원지에 더 가까워진 모양이다. 천장이 높은 이 아파트에 가구는 없었다. 울프가 이사 온 집보다 훨씬 넓었지만 더 쾌적하지는 않았다. 누렇게 바랜 벽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서 배선과 단열재가 제멋대로 빠져나왔다. 욕실과 주방은 1960년대 이후로 전혀 수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슨.. 2022. 1. 19. "어떻게 알았어?" "저 이래봬도 수사관입니다." "그 정도로 사건에 대해 잘 안다면, 자넨 가장 유력한 용의자야, 당장 여기로 와." "그러죠. 그런데 그 전에 입을 옷이......" 울프가 말을 맺기도 전에 시몬스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경찰차의 깜박이는 경광등 불빛 사이로 세탁기의 주황색 불빛이 눈을 찔렀다. 그제야 확실히 생각났다. 어젯밤 근무복을 빨아만 놓고 아직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벽에 줄줄이 늘어선 이삿짐 상자 수십 개를 바라보자, 욕이 저절로 나왔다. "젠장." 5분 후, 울프는 아파트 앞에 벌떼처럼 모여든 구경꾼을 헤치고 경관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곧바로 저지선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젊은 경관은 울프의 손에서 낚아챈 신분증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러고는 낡은 티셔츠아 반바지 차림으로.. 2022. 1. 19. 이전 1 2 3 4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