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지 못한 피해자는 참혹한 최후와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아닌가요?" 시몬스 경감은 울프가 있는 창가 쪽으로 돌아와 쪼그려 앉았다. 구릿빛 피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시몬스가 모르겠다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칼리드입니다." 울프가 말했다. "말도 안 돼." 시몬스는 생명의 빛이 꺼진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의심은 점차 깊은 우려로 바뀌었다. "백스터!" 시몬스가 외쳤다. "애덤스와...." "에드먼즈요." "...벨마쉬 교도소에 다녀와. 교도소장에게 나기브 칼리드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해." "칼리드요?" 깜짝 놀란 백스터가 울프를 쳐다보았다. "그래, 칼리드. 확인해 보고 살아 있으면 당장 내게 전화하고, 어서!" 울프는 그가 살고 있는 건너편 아파트 동을 쳐다보았다. 불을 밝힌 집은 얼마 없었지만 몇몇은 흥분한 얼굴로 아래의 소란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섬뜩한 장면을 촬영해 날이 밝으면 친구들에게 보여주려는 거겠지. 이곳 살인 현장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듯했다. 보였다면 진작 이쪽으로 카메라 각도를 잡았을 것이다. 울프의 시선이 건너편 아파트의 창문 몇 개를 지나 그의 집 창문에서 멈췄다. 서두르느라 불을 다 켜놓고 나왔다. 탑처럼 쌓인 종이 상자 중 하나에 '셔츠와 바지'라고 휘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시몬스가 피곤한 눈을 문지르며 울프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천장에 매달린 시체의 양 옆에 서서 동이 트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방 안의 소음과 대조적으로 바깥에서는 새가 평화롭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은 처음이지?" 시몬스가 가볍게 물었다. "첫 번째는 아니고, 아깝게 두 번째네요." 울프는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두 번째라고? 이보다 심한 게 있었어? 뭔지 물어보기도 겁나는군." 시몬스는 토막을 이어붙인 시체를 마지못해 다시 바라보았다. 울프가 조심스럽게 시체의 오른팔을 건드렸다. 피부가 구릿빛이고 손톱에 보라색 매니큐어까지 칠해서인지 손바닥이 더 창백해 보였다. 일자로 뻗은 팔을 가느다란 실 수십 개가 지탱하고 있었거, 더 많은 실이 검지를 억지로 펼쳐 손가락질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울프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시몬스에게만 속삭였다. "손가락이 제가 사는 집 창문을 가리키고 있어요." 백스터는 엘리베이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에드먼즈를 두고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돌아섰다. 계단은 밤새 추위에 떨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주민들로 북적였다. 짜증을 내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경찰 신분증을 보이며 계단을 내려가던 백스터가 신분증을 다시 넣었다. 경찰이라고 하니 오히려 길을 비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진 직후에는 경찰을 보고 신기해하던 주민들도 몇 시간째 잠을 못 자게 만드는 경찰들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었다. 백스터가 간신히 1층으로 내려와 보니 에드먼즈는 진작 아파트 로비에 도착해 있었다. 백스터는 에드먼즈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쌀쌀한 아침거리로 나왔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지긋지긋한 폭염이 계속될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온 백스터는 욕설을 내뱉었다. 폴리스라인 주변에 몰려든 기자와 구경꾼 숫자가 늘어나며 그녀의 검정색 아우디 A1 차량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었다. "입도 뻥끗하지 마." 백스터가 에드먼즈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에드먼즈는 늘 그랬듯 잠자코 있었다. 폴리스라인에 이르자 질문이 날아들고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저지선을 넘어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는 백스터의 뒤로, 에드먼즈가 기자들에게 앵무새처럼 사과하는 소리가 들렸다. 백스터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에드먼즈를 노려보려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앞에 있던 덩치 큰 남자와 부딪치도 말았다. 남자가 떨어뜨린 텔레비전 방송용 카메라는 엄청난 수리비를 예감하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젠장! 미안합니다. 백스터는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식으로 건넨 명함이 수백 장은 됐다. 차용증처럼 명함을 건네고 돌아서면 또 까맣게 잊곤 했다. 거구의 남자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방으로 흩어진 카메라 잔해를 죽은 연인인 양 애처로베 바라보았다. 그때 한 여자가 손을 불쑥 내밀어 백스터의 명함을 낚아챘다. 불쾌해진 백스터가 고개를 들자, 신경질적인 얼굴이 보였다. 그여자는 이른 아침에도 텔레비전 출연을 위해 풀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피곤에 찌든 사람들 특유의 다크서클도 없었다. 세팅한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는 깔끔한 투피스 차림이었다. 두 여자가 말없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 에드먼즈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직속 상사이자 사수인 백스터가 이렇게 기를 못 펴는 상대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붉은 머리 여자가 에드먼즈를 힐끗 쳐다보았다. "드디어 자기 나이에 맞는 짝을 찾았나 봐요." 그 여자가 비아냥거리자 백스터는 옆에 서 있는 에드먼즈를 못마땅하게 째려보았다. 여자가 이번에는 에드먼즈를 향해 안쓰럽다는 듯 물었다. "당신 상관이 같이 자자고 유혹하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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