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래봬도 수사관입니다." "그 정도로 사건에 대해 잘 안다면, 자넨 가장 유력한 용의자야, 당장 여기로 와." "그러죠. 그런데 그 전에 입을 옷이......" 울프가 말을 맺기도 전에 시몬스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 경찰차의 깜박이는 경광등 불빛 사이로 세탁기의 주황색 불빛이 눈을 찔렀다. 그제야 확실히 생각났다. 어젯밤 근무복을 빨아만 놓고 아직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벽에 줄줄이 늘어선 이삿짐 상자 수십 개를 바라보자, 욕이 저절로 나왔다. "젠장." 5분 후, 울프는 아파트 앞에 벌떼처럼 모여든 구경꾼을 헤치고 경관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곧바로 저지선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젊은 경관은 울프의 손에서 낚아챈 신분증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러고는 낡은 티셔츠아 반바지 차림으로 당당히 서 있는 울프를 수상하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이 윌리엄 레이튼 폭스라고요?" 경관은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울프는 자신의 화려한 이름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폭스 경사 맞습니다." "그러니까.... 법정 난동 사태의 주인공인 그 폭스란 말이에요?" "내 이름이 정확히는 윌리엄 올리버...., 지나가도 될까요?" 울프가 아파트 건물을 향해 들어가겠다는 손짓을 했다. 젊은 경관은 신분증을 돌려주고, 울프가 지나갈 수 있게 테이프를 들어주었다.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경관이 물었다.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경관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4층입니다. 혼자 올라가려면 조심하세요. 쓰레기 같은 동네거든요." 울프는 다시 한번 무거운 한숨을 쉬고, 표백제 냄새가 나는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2층과 5층 버튼이 사라진 엘리베이터 제어판에는 갈색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수사관으로서의 경험에 비춰볼 때, 얼룩은 대변, 녹, 콜라 중 하나가 분명했다. 지금까지 이런 엘리베티어를 수백 대도 더 타 보았다. 허름한 아파트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에는 바닥 깔개도, 거울도, 조명도, 부속품도 없었다. 망가뜨릴 물건도, 훔쳐서 쓸 만한 물건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음란한 글귀를 쓰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여기 사는 누구누구가 '추남' 이고 '게이'라는 부분까지 낙서를 읽었을 때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시끄럽게 열렸다. 조용한 복도 곳곳에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있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람들은 울프의 옷을 못마땅하게 훌겨보았다. 하지만 과학수사팀 배지를 단 후즐근한 남자만큼은 지나가는 울프에게 양 손 엄지를 들어 보였다. 복도 끝으로 다가갈수록 익숙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분명 죽음의 냄새였다. 이런 일을 자주 접하는 사람은 퀴퀴한 공기와 대소변 냄새, 살이 썩는 냄새가 섞인 독특한 악취에 익숙했다. 안에서 누가 달려 나오는 소리에 울프가 한 걸음 비켜섰다. 열린 현관문으로 젊은 여자가 뛰어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그의 발밑에 토를 했다. 여자에게 언제 비켜달라고 해야 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도 토할까 봐 울프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그런데 이번에 복도로 달려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에밀리 백스터 경사였다. "울프! 여기 숨어서 뭐해요?" 백스터의 목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진짜 대단한 사건 같지 않아요?" 백스터는 신이 나서 울프를 아파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백스터는 그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지만 키는 비슷했다. 현관의 어두운 조명을 받자 그녀의 짙은 갈색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늘 그랬듯 스모키 메이크업을 해서 맭적인 눈이 더 커 보였다. 딱 달라붙는 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은 백스터는 울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짓궃은 미소를 지었다 "사복 입는 날인 줄은 몰랐네." 울프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음ㄴ 백스터는 금세 흥미를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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