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보통이라면." 유키에가 그의 말꼬리를 잡았다. "다카유키 씨도 게이코 씨와 같은 생각이라는 건가요?" "그녀만큼 명확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게 말하고 다카유키는 커피를 마셨다. 바람에 몸이 서늘해져 따끈한 커피가 아주 맛있게 느껴졌다. "사람은 남 얘기에는 냉정할 수 있지만, 자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서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죠. 도모미가 교통사고라는 흔한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 말입니다. 아마 게이코 씨도 그런 심정 아닐까요." 유키에는 양손으로 쥔 자신의 머그 컵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누군가 도모미 언니를 죽이려 했다는 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요. 게이코 씨는 동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는데, 다카유키 씨는 혹시 짐작 가는 게 있나요?" "아니요, 저 역시 전혀." "만약.... 이건 정말 만약인데, 게이코 씨 말처럼 누군가가 도모미 언니 죽음을 바라고 어떤 수를 썼다면, 다카유키씨는 그 누군가를 당연히 원망하겠죠?" 유키에는 진지한 눈길로 다카유키를 바라보았다. 대답하기에 앞서 다카유키는 왜 그녀가 그런 질물을 하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그렇죠. 도모미의 죽음이 누군가 의도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렇게 외도된 장치는 없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렇죠? 저도 그래요." 유키에는 진지하게 물었던 것이 겸연쩍은 듯 살짝 미소를지었다. "제가 일기를 쓰거든요. 여기에도 가져왔는데, 오늘 밤 일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난감할 것 같네요." "있는 그대로 쓰면 되지 않을까요." 다카유키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요." "도모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유키에 씨 얘기 좀 해 보죠. 좋은 남자를 찾았나요?" 유키에는 말없이, 조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미소만 머금었다. "기도 씨와 꽤 친해 보이던데.." 그는 아까부터 조금 마음에 걸렸던 얘기를 꺼내 보았다. 유키에의 표정에 뭐라 말할 수 없이 우울한 빛이 어렸다. "전에 아버지들끼리의 술자리에서 그 사람 상대로 제가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있었나 봐요. 우리 아버지는 농담으로 한 얘기라고 하시는데 그쪽은 그렇지가 않았는지, 그 후부터 기도 씨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둥 식사를 하자는 둥 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전 늘 시간이 안 된다고 피하고 있지만." "옆에서 보기에 기도 씨는 유키에 씨에게 홀딱 반한 것 같던데요." 그러자 유키에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고 할까.... 연애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요컨대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타입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은 걸례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본인의 생각이 확실하다면 분명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유키에 씨를 보는 그 사람 눈이 마치 자기만의 보물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려고 하기는 하는데, 여러 가지로 친절하게 대해 주니까 좀처럼 입이 안 떨어지네요. 게다가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받은 것도 아니고." 기도로서는 이미 약혼한 기분일 테니까 그럴 필요를 느끼지않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답답했지만 다카유키는 굳이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카유키가 커피를 다 마셨을 때 뒤에서 유리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틀어 돌아보니 양반은 못 되는지 기도 노부오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샤워를 했는지 잠옷 바람에 머리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다카유키에게는 질투 때문에 머리가 뜨거워져서 나는 김처럼 보였다. 그는 다카유키와 유키에를 번갈아 보더니 비난조로 물었다. "뭐하고 있었습니까?" "도모미 언니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죠?" 유키에가 동의를 구하자 다카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도는 다카유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나중에 방으로 와 달라고 했는데 못 들었습니까?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일로 얌전히 2층으로 올라가나 했더니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그러고서 그는 유키에가 오기 전에 서둘러 샤워를 한것이다. "미안해요. 그런데 오늘은 좀 피곤해서." 유키에가 그렇게 말하자 기도는 입을 비죽거리며 허리에 손을 얹고 먼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몸짓을 했다. "내내 여기 있었습니까? 호오, 시원하니 경치도 좋군요.빈정거림이 담긴 말투였다. "여기 앉으세요. 전 이제 방으로 돌아갈 테니까." 유키에는 머그 컵 두 개를 쟁반에 담아 들더니 냉큼 베란다에서 물러갔다. 기도와 다카유키의 어색한 분위기만 뒤에 남았다. "이제.... 저도 샤워를 하고 자야겠군요." 다카유키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기도와 단둘이 할 만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 잠깐만요. 가시마 씨." 기도의 말이 다카유키를 막았다. 기도는 다카유키 옆으로 다가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쪽의 딱한 처지는 동정이 갑니다. 슬픈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콧잔등을 씰룩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유키에 씨에게서 위로를 얻으려 하는 것은 좀 뭐하지 않나싶습니다." 그녀에게 바람맞은 분풀이를 하는 듯했다. "그럴 마음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좋습니다만, 이상한 기대는 품지 않는편이 신상에 좋을 겁니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서 다카유키는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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