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키 측에서 파견한 변호사는 다카유키가 입은 손실을 무조건 배상하겠다는 쪽으로 얘기를 끌고 갔다. 하지만 그가 입은 피해는 별것없었다. 눈에 띄는 손실이래야 그날 촬영을 하지 못해 고객이발주를 취소한 정도였다. 얘기가 그 정도로 마무리된 후 다카유키는 사고를 낸 여자를 면회하러 갔다. 책임 소재와는 상관없이 한번 면회를 가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담당 경찰이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경찰은, 요즘은 자기가 잘못이 명백한데도 면회조차가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한탄했다. 나름 성의를 발휘해 꽃다발까지 사 들고 그녀의 병실을 찾아갔다. 당연히 면회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노크했다. 문 옆에 "모리사키 도모미"라고 팻말이 걸려 있었다. 잠시 기다렸는데 반응이 없었다.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꽃다발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갈까 생각했다. 그러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면회를 다녀왔다는 체면도 설것이라고. 다카유키가 돌아서려는 순간 병실 안에서 뭐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녀가 잠이 깼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노크를 해 보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다카유키는 손잡이를 잡고서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문을 당겨 보았다. 소리가 왠지 마음에 걸렸고,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문을 20센티미터 정도 열자 창가에 있는 침대가 보였다. 그것을 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침대 위가 피로 뻘겋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 보니 침대에 누운 여자는 얼굴에 핏기 없이 축 늘어져 있고, 담요 밖으로 나와 있는 왼 손목에는 칼 자국이 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침대 밑에는 과일칼이 떨어져 있었다. 병실에서 뛰쳐나온 다카유키는 간호사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의 재빠른 행동 덕분에 도모미는 목숨을 건졌다. 10분만 늦었어도 위험한 상태였다고 했다. 응급 처치를 받은 도모미가 잠들어 있는 동안 다카유키는 병원 밖에서 그녀의 부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딸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현 후, 이번 사고로 피해를끼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괜찮다는 뜻을 전한 후 다카유키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보다, 따님은 왜 자살을.....?" 어머니인 아쓰코는 눈물만 닦고 있었고 아버지 노부히코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도모미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모모미는 자신이 소속된 발레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다음 공연에서는 드디어 솔로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절망한 나머지 죽으려고 했던 모양이라고 노부히코는 말했다. "발레는 상처가 나으면 다시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다카유키의 말에 아쓰코가 오열을 터뜨렸다. 그리고 노부히코는 맥없이 고개를 저었다. "딸은 발레는 커녕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답니다." "네?" 다카유키는 상대의 얼굴으 다시 보았다. "부서진 차체에 끼여 왼쪽 다리를 잃고 말았어요. 지금 그아이의 왼쪽 다리는 발목 아래가 없습니다. 발레도 발레지만, 평범한 여자로서의 인생조차 바랄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손목을 그은 것이겠죠." 아쓰코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다카유키는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이 그들에게 사과할 입장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도모미의 의식이 돌아온 날로부터 일주일 후 다카유키는 다시 그녀를 찾았다. 그대로 모르는 척하고 있자니 마음에 걸렸고,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마음 정리가 안 되었는지, 다카유키가 찾아갔을 때도 도모미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러고 딸이 또 이상한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아쓰코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도모미는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였다. 얼굴이 조그맣고, 발레를 해서 그런지 몸도 가녀렸다. 대화가 잘될 리 없었지만 다카유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애썼다. 물론 발레와 교통사고와 신체 장애에 관한 화제는 철저하게 피했다. 도모미는 굳은 표정으로 대꾸도 별로 하지 않은 채 그가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래도 때로 농담을 하면 비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이 비치는 것처럼 그녀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눈이 겁이 날 정도로 맑아 다카유키는 그녀에게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날 병원을 뒤로했을 때 다카유키는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 후에 아쓰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와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가 말을 꺼내기 민망하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딸이 가시마 씨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 줄 수 있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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