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유키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도모미가 사용하던 방, 도모미가 잤던 침대라는 의식이 있는 탓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떠올리지 말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억지다. 잠시 선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한밤중에 다시 잠이 깼다. 흥분이 식지 않았다. 너무 조용한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듯했다. 다카유키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창밖에서 나뭇가지들이 사락사락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모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저녁을 먹은 후에 게이코가 했던 얘기도. 다카유키는 그녀의 의문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말했듯이 예의 사고 후로 운전을 할 때면 도모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 전까지는 젊은 여자답게 스피드에 열을 올렸지만 그 사고가 있고부터는 제한 속도에서 10킬로미터를 넘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운전하는 사람은 현재 이 나라의 운전자들 중에는 흔치 않다. 예의 사고란 2년 전에 발생한 자동차 사고를 말한다. 그 사고가 있었던 탓에 도모미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고 다카유키의 운명 또한 바뀌었다. 그때 일을 다카유키는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비 내리는 고슈 가도를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날은 촬영 스케줄이 있어 봉고차 뒤에 기자재가 실려 있었다. 모식품 회사가 채용 광고용으로 발주한 일이었다. 회사의 휴양소와 오락 시설을 촬영해서, 각 대학을 찾아다니며 채용 활동을 할 때 학생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다른 스태프들은 먼젖 가 있고 다카유키 혼자 봉고차에 타고 있었다. 자신이 과속하고 있다는 의식은 없었다. 충격에 약한 기자재가 있어서 평소보다 신중하게 운전했을 정도니까. 앞 차를 추월하지도 않고 계속 왼쪽 차선으로 달렸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느닷없이 엔진 굉음이 들렸다. 다카유키는 백미러를 힐끔 보았다. 오른쪽 뒤에서 빨갛고 납작한 스포츠카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침 그때 다카유키의 차에서 20미터 정도 앞에 있던 차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서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깜빡이를 킨 채 속력을 늦추더니 도로 위에서 그대로 정지했다. 우회전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었다. 뒤쪽의 빨간 스포츠카는 오른쪽 차선, 즉 타카유키의 차 뒤에 붙었다. 게다가 그런 차들이 흔히 그러듯 상대에게 빨리 꺼지라는 식으로 차 간 거리를 좁혔다. "귀찮은 차가 따라붙었군." 다카유키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위회전을 기다리는 차 옆을 지나가려 할 때였다. 보도에서 무언가가 굴러왔다. 조그만한 축구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공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 다카유키는 브레이크를 먼저 밟았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차체가 미처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미끄러지면서 뒤에 실린 기자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바로 충격이 있었다. 무언가에 쿵 들이받힌 것이다. 다카유키는 뒤에서 달려오던 빨간 차가 자신의 차를 받았다는 것을 이내 알아챘다. 그런데 빨간 차가 똑바로 달려와 충돌한 것은 아닌 듯했다. 운전자가 핸들을 꺾어 왼쪽으로 피하려 한 듯, 다카유키의 차왼쪽 뒤에 접촉한 후에도 그 차는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보도위에 설치된 전화 부스를 들이받고 말았다.다카유키는 잠시 숨이 막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연 뒤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괜찮아요?" 옆으로 지나가던 차 운전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가볍게 손을 들었다. 빨간 차는 전화 부스를 받은 후 다시 전신주에 부딪쳐 앞쪽 4분의 1 정도가 짜부라져 있었다. 앞 유리창도 전화 부스도 박살이 나서 사방에 크고 작은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차는 핸들이 왼쪽에 있는 외제 차였고 타고 있는 사람은 운전자 한 명뿐이었다. 핸들을 꽉 잡은 두 손 사이에 파묻듯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긴 머리로 봐서 여자인 듯했다. 누가 신고했는지 얼마 있자 구조대가 출동했다. 구조대는 상당히 오래 걸려 찌그러진 차체에서 그녀를 끌어냈다. 그녀는 의식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들것에 실려갈 때 몸을 꼼짝하지 않았다. 다카유키 역시 구조대의 지시를 따라 구급차에 올라탔다. 병원에서 일단 검사를 받은 후 각처로 연락을 하고 있는데 사고를 낸 여자의 부모인 듯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모리사키 제약 회사의 사장이라는 것은 나중에 교통과 경찰이 알려 주었다. 사고에 대해서 다카유키도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지만, 그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경찰도 알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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