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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정보

곤봉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때,

by inhyuk9501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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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깨달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칼리드를 향한 그의 공격이 충분했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출구로 달아나던 방청객들이 쏟아지는 경찰 병력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배심원 사만다 보이드는 바닥에 쓰러져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몇 미터 앞의 소동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떤 여자 하나가 사만다를 일으켜 세우더니 법정 밖으로 인도해 주었다.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법원 중앙 로비까지 나온 사만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 밀려 다시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거기서 20미터 높이에 이르는 웅장한 돔 천장과 육중한 조각상,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벽화를 망연자실한 채 올려다 보았다. 사만다의 눈앞에 보이는 법원의 육중한 출입문은 지금 활짝 열려 있다. 구름 낀 런던 하늘도 그녀에게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사만다는 비틀거리며 법원 밖으로 나왔다. 일부러 포즈를 취했다. 해도 이보다 완벽한 구도의 사진이 나오기는 어려웠으리라. 새하얀 원피스에 피를 뒤집어 쓴 아름다운 금발의 배심원은 넋이 나간 채 서 있고, 그녀의 머리 위에서 정의의 여신상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만다는 플래시를 마구 터뜨리며 덤벼드는 기자들을 무시한채 뒤를 돌아보았다. 수천 대의 카메라 불빛이 법원 출입구 위에 새겨진 문장을 비추고 있었다. 돌기둥 네 개가 그 문장의 우세를 지탱하려는 듯 석판을 떠받들고 있었다. 가난한 아이를 변호하고, 죄인을 버하라. 그문장을 읽은 순간, 사만다의 마음 속에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녀는 과연 울프 수사관이 칼리드의 유죄를 확신한 만큼 칼리드의 무죄를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랬기에 무죄에 한 표를 던졌나? 다시금 정의 여신상으로 시선을 돌린 사만다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미 그녀의 이름은 죄인 명부에 올라가 있음을. 그녀는 방금 심판을 받은 것이다. 4년후...... 울프는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를 찾아 손을 뻗었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전화기는 마룻바닥 위에서 울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새로 이사와 아직 익숙지 않은 아파트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울프는 땀에 젖은 이불보를 휘감은 채로, 성가시게 윙윙거리는 전화기를 향해 매트리스 위에서 기어내려왔다. "울프입니다." 전등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던 울프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다행히 잠결에도 헛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나야, 시몬스." 스위치를 켜자 백열등 불빛이 쏟아졌다. 울프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불을 꺼버리고 싶었다. 좁은 침실에 물건이라고는 바닥에 깔린 낡은 매트리스와 천장에 달린 전구가 고작이었다. 방은 밀실공포증이 생길 만큼 좁았고 창문을 열 수 없어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군." 시몬스 경감이 말했다. "몇 시죠?" 울프가 하품을 했다. "새벽 4시 10분 전." "저 이번 주말에 휴가 아닙니까?" "지금부터는 아니야. 내가 있는 현장으로 나와 줘야겠어." "현장요? 경감님 사무실 책상 옆으로 오라고요?" 울프는 몇년째 사무실에서만 틀어박혀 있는 상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상부에서 나보고 직접 나가래." "그렇게 심각해요?" 수화기 반대편에서 침묵이 흐르더니, 한참 만에 시몬스가 대답을 했다. "많이 안 좋아. 옆에 펜 있나?" 울프는 문가에 쌓아둔 상자 하나에 볼펜을 찾아 잘 나오는지 손등에 시험을 하며 말했다. "있어요. 말씀하세요." 얼핏 주방 찬장에 불빛이 어른거렸다. "주소가...." 시몬스가 사건 현장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모양이었다. 울프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휑한 주방으로 걸어가자 부엌 창문 아래로 푸른색 불빛이 환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와 있는 경찰차의 경광등 불빛이었다. "..트리니티 타워..." "켄티시 타운 히바드 로드요?" 울프가 시몬스 경감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리고 창밖을 다시 내려다보니, 맞은편 아파트 주차장 앞에 열 대도 넘는 경찰차와 기자들이 깔려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대피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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