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스터가 환하게 웃었다. "나라도 시체를 보느니 카리브 해로 크루즈 여행을 가겠다." 울프는 담담하게 말했다. 백스터가 놀라서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경감님 말 못 들었어요?" "무슨 말?" 백스터는 아파트 안으로 앞장섰다. 집 안은 미리 온 감식반원들이 손전등 열 몇 개를 꼭 필요한 곳에만 달아놓아서 무척 어두웠다. 복도에서 맡았던 냄새가 점점 전해졌다. 머리 위를 쌩쌩 날아다니는 파리 떼를 보니 악취를 풍기는 진원지에 더 가까워진 모양이다. 천장이 높은 이 아파트에 가구는 없었다. 울프가 이사 온 집보다 훨씬 넓었지만 더 쾌적하지는 않았다. 누렇게 바랜 벽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서 배선과 단열재가 제멋대로 빠져나왔다. 욕실과 주방은 1960년대 이후로 전혀 수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슨 말을 들어?" 울프가 다시 물었다. "이건 일생일대의 사건이에요, 울프.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백스터가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없을 사건이란 말이에요." 울프는 백스터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집을 보고 있자니,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도 바가지를 쓰고 이사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퉁이를 돌자 사람들로 꽉 찬 안방이 나왔다. 울프는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잡다한 장비와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훑어 보았다. "백스터!" 울프가 다시 백스터를 불러 세우자, 백스터가 앞으로 가다 말고 짜증스럽게 돌아보았다. "경감님이 무슨 말을 했냐고?" 백스터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서자, 바닥부터 천장까지 뻗은 커다란 창문이 드러났다. 백스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울프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울프는 눈높이 위쪽의 한 지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범인이 집 안에서 빼놓지 않은 딱 하나의 전구가 달려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어두운 무대에는...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알몸이 천장에 매달린 채, 방문을 등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천장에 설치된 공업용 갈고리 두개에서 뻗어 나온 수백 줄의 투명한 실이 시체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울프는 이처럼 비현실적인 풍경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특징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는 눈을 의심하면서 시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고 나아갔다. 토막 난 시체를 커다란 바늘땀이 한 땀, 한 땀 연결하고 있었다. 한쪽 다리는 피부가 검은 남자의 것이었지만 반대편 다리는 눈처럼 하얗다. 큼지막한 남자의 손 반대편에는 까무잡잡한 여자의 손이 보였다. 마른 백인 여자의 몸통 위로 헝클어진 검은 머리가 불길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백스터는 울프의 혐오스러운 표정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면... 시체는 하나인데 피해자가 여섯 명이란 말이죠!" 백스터가 들뜬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울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기괴한 시체의 그림자를 밣고 있었다. 그림자로 형태가 단순해지자 시체의 부자연스러운 비율이 더 두드러졌다. 게다가 몸통과 팔다리를 연결한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바람에 결함 부위가 일그러져 보였다. "왜 벌써부터 기자들이 왔어?" 시몬스 경감이 특별히 누구를 지목하지 않고 외쳤다. "또 누가 정보를 유출한 거야?" 기자와 말섞는 사람이 있으면 정직당할 줄 알아!" 웃음이 나왔다. 시몬스는 전형적인 상관 행세를 하면서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울프는 시몬스와 10년 넘게 같이 일했고, 칼리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지금부하들에게 일부러 권위를 세우고 있는 시몬스도 사실 현장에서 발로 뛰던 유능한 수사관이었다. "폭스!" 시몬스가 두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부하들의 별명을 부르는 법이 별로 없었다. 50대 초반인 시몬스는 울프보다 20센티미터는 더 작았고, 관리직으로 승진한 뒤로 뱃살만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사복 입는 날인 줄은 몰랐네." 옆에서 백스터가 키득거렸다. 울프는 백스터가 아까 사복에 대해 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관의 말을 무시했다. 시몬스 경감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백스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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