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거의 모든 방을 볼 수가 있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모조 레이코가 감정을 억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비스듬하게 2층 복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은 맨 끝에 있는 유키에 씨의 방뿐이네요." 1층과 2층이 뚫려 있는 곳은 라운지 위뿐, 식당과 주방 위에는 당구와 마작을 하기 위한 오락실이 있다. 그 방에 가려서 유키에의 방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자기 방에서 나와 유키에 씨의 방으로 ㄱ려고 했을 경우 여기 있는 사람에게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이 반드시 보였을 거라는 얘기겠죠." 진의 지적에 따라 시모조 레이코가 인질 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듯했다. 그 말에 반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군, 당신. 아무것도 못 봤어?" 레이코가 제기한 문제를 노부히코가 아쓰코에게 확인했다. "네, 못 봤어요. 하지만." 그녀가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중간에 몇 번 졸았으니까, 그때였다면 몰랐을 수도 있죠." "자네는 어때, 뭘 봤나?" 도시아키가 진에게 물었다. "누가 바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면 내가 가만히 있었을 리 없잖아." 뻔한 것을 왜 묻느냐는 투로 진이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화장실에 간 동안에는 틈이 생겼을 수도 있어." "화장실에 갔었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다녀왔지. 인질이 있는 데다 당신네들이 그 짧은 시간에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단, 그 틈에 경찰에 연락하면 곤란하니까 전화기를 빼서 화장실에 들고 갔어. 성가시게도 말이야." 그 틈을 놓치다니 아깝다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화장실에 갈 걸 알았다면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망을 봤을 것이다. "화장실에 갔을 때 내 아내는 어떻게 하고 있었지?" 노부히코가 물었다. "당연히 데리고 갔지. 어쩔 수 없잖아. 화장실이 넓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부인이 내가 오줌 누는 소리를 들었을거야." 진은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아쓰코는 고개를 숙이고, 노부히코는 불쾌감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화장실에 간 게 몇 시쯤이었지?" 다카유키가 물었다. "음, 그러니까..... 새벽 5시쯤이었나." 진이 아쓰코를 보며 동의를 구했다. "맞아요. 아마 그럴 거야." 그녀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 외에 자리를 뜬 적은?" "없지. 부인은 한 번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 곱게 자란 사람은 아랫도리도 기품이 있는 모양이야." 다카유키는 진의 그 천박한 표현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요. 물론 누군가가 자기 방에서 나와 유키에 씨를 죽이려 했다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시모조 레이코가 말했다. 다카유키도 같은 생각이었다. 범인은 아마 문을 살짝 열어 놓고서 진이 틈을 보이기를 줄곧 기다렸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체 누가 유키에를 죽이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겠느냔 말이야." 노부히코가 고개를 흔들었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진이 바닥을 쾅쾅쳤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사람을 죽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다니. 무슨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짓은 우리가 사라진 후에 하라고. 어!." "기도 씨, 유키에가 자살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나요?" 아쓰코가 그렇게 물은 것은 기도가 의사니까 달리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점은 그녀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유키에 씨 등에 칼이 꽂혀 있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그 위치에 칼을 꽂는 건 무리죠." 기도의 대답은 다카유키의 예상대로였다. 아쓰코는 낙담하는 표정이었다. 자살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단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칼은 어떤 것이었죠?" 다카유키가 아쓰코에게 물었다. "나는 본 적이 없는 거였어." 아쓰코가 대답했다. "과일칼 같은데, 유키에가 가져온 게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려워요. 범인이 준비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납득하기 쉽죠. 아무 흉기도 없이 사람을 죽이려 할리 없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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