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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정보

"190"

by inhyuk9501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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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코가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범인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부검 같은 걸 하면 어느 정도 실마리는 잡을 수 있겠지?" 노부히코가 기도에게 물었다. "사망 시각이나 사인 등을 알 수 있죠.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겠지..." "우리가 떠나고 나면 어차피 경찰에 연락할 텐데 뭘 그래." 진이 말했다. "그러면 경찰이 시신을 가져가서 부검이든 뭐든 할 거 아닌가. 감식도 하겠지. 지문도 채취하고. 이것저것 해 볼 거야. 그럼 의외로 쉽게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부탁이니까 이 이상 복잡한 일은 우리가 여기를 떠난 다음에 하라고." '부탁이니까'라는 말에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어쩔 줄 몰라하는 진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도시아키가 진에게 말했다. "정말 자네들이 한 짓이 아니란 말이지?"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우리가 한 짓이 아니야. 그 여자를 죽인 사람은 당신네들 중 하나라고. 우리가 죽였다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거야.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인질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것을 모두가 인정한 셈이다. 즉 앞으로 의심해야 할 사람은 지금까지 믿고 지냈던 관계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묵직한 공기가 모두의 머리를 짓눌렸다. "배가 고픈대." 다구가 말했다. 진이 혀를 끌끌 찼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니."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배고픈 게 당연하지." 다구의 말에 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쓰코를 보며 말했다. "뭐라도 좀 만들어 봐. 간단한 거라도 좋으니까 양만 많으면 돼." 아쓰코는 아무 대꾸도 않은 채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게이코와 시모조 레이코도 아쓰코의 뒤를 따랐다. "난 필요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군." 노부히코가 말했다.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목구멍으로 뭐가 넘어갈 리 없죠." 기도도 그렇게 말했다. "나도 식욕은 없지만 뭐든 먹어 두지 않으면 체력을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어머니, 샌드위치나 만들어서 저기 놓아두세요." 도시아키가 그렇게 말하자 아쓰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과 여자들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구는 잠을 충분히 잤는지 눈을 번뜩이며 남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제처럼 귓속말을 속삭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러지 전에 애초에 얘기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범인이 아닌 사람 모두가 다른 사람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다구의 얼굴을 보면서 다카유키는 어젯밤 이 남자가 갑자기 잠에 빠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진이 말했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면제를 먹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쩌면,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유키에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범인은 그 준비 차원에서 다구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이 아닐까. 진 혼자서 전원을 지켜보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범행의 기회가 생긴다. 게다가 배신도 그렇다. 다카유키는 지금까지 두 번의 경험으로 인질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첫 번째는 SOS란 글자가 지원진것, 두 번째는 정전 작전이 수포로 돌아간 것. 배신자가 유키에를 죽였을 가능성이 있다면,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두 번의 방해 공작은 모두 유키에를 죽이기 위한 복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진과 다구가 여기 있는 한 가령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해도 곧바로 경찰에 연락할 수가 없다.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단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희미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도주한 후에는 유키에를 죽인 범행까지 그들에게 덮어씌우면 그만이다. 범인이 거기까지 예상하고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강도가 침입한 상황을 이용하려 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역시 범인은 진이나 다구가 아니라고 다카유키는 확신했다. 범인은 모리사키 부부, 모리사키 도시아키, 아가와 게이코, 시모조 레이코, 기도 노부오, 이 여섯 명 중에 있다. 경솔하게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기도가 여전히 울먹이는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필이면 그 사람이 죽다니, 역시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둘이서 바다로 드라이브나 갔으면 좋았을걸." 그 중얼거림은 그녀를 별장으로 초대한 노부히코 부부에 대한 비난으로 들렸다. 그래서인지 노부히코는 두 눈을 꾹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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