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실 대로 좀 어질러져 있지만." 그러나 아무도 일어서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살피는 눈치였다. 사실은 혼자 있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 모르니 자리를 뜰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진과 다구는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었다. 커튼을 꼭꼭 닫힌채였다. 이제는 경찰도 순찰을 돌지 않는 듯했다. 분위기의 무거움이 최고조에 다했다고 여겨졌을 때였다.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전원이 몸을 움찔했다. 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아쓰코에게 총구를 겨눴다. "받아, 몇 번이나 말하지만 허튼짓은 하지 말고." "나도 알아요." 아쓰코도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는지, 긴장은 해도 겁먹은 기색은 아니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그런데 수화기를 들기 직전에 벨 소리가 멈췄다. "뭐야, 잘못 걸려 온 전화인가." 아쓰코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곧바로 다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진이 아쓰코를 제지했다. "잠깐만. 6시가 넘었군." 그가 시체를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좋아, 여기 그대로 있어. 전화는 내가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바꿔 줄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고." 그가 장갑 낀 손으로 수화기를 들더니 신중한 동작으로 귀에 가져다 댔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진은 긴장한 얼굴로 상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약 2초 후,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후지, 어떻게 된 거야. 대체?" 그 말에 다구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후지라는 동료에게 걸려 온 전화인 듯했다. 인질들의 얼굴에 새로운 긴장감이 어렸다. "어, 실은 이쪽에도 문제가 생겼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진은 은신하려던 집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등을 대충 설명했다. 상대가 상당히 놀라고 당황했다는 것을 진의 말투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니까, 순찰 도는 경찰이 또 언제 올지 모르고, 이 별장을 나갈 수도 없어.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진이 매달리듯이 말했다. 그 말투에서 후지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감이 엿보였다. "음.... 알았어. 그럼, 손은 안 댔지.... 아,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군. 오케이, 준비해 놓지." 5분 정도 지나 전화를 끊은 진이 다카유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신네들에게는 좋은 소식이군. 드디어 우리의 출발 시간이 정해졌다. 내일 동트기 전." 노부히코가 외쳤다. "그럼 아직도 열두 시간 가까이 남아 있지 않나. 그때까지 이런 짓을 계속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잖아. 사람들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그래도 동트기 전까지 기다릴 건 없잖나. 밤이 깊어지면 바로 출발해도 되지 않느냐 말이야." "파트너가 후지라고 했나?" 도시아키가 말했다. "왜 그렇게 늦게 오는 거야. 좀 더 빨리 오라고 하지." "그럴 수 없으니까 이 고생인 거 아니야." "그럴 수 없다니. 왜?" 도시아키의 질문에 진은 대답할 듯이 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네들과는 관계없는 일이야." "그러고 보니." 시모조 레이코가 끼어들었다. "이쪽에서 그 후지라는 인물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고 했죠? 그렇다면 그 후지라는 사람이 상당히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진은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걸어가 예쁘게 생긴 코 앞에다대고 권총을 좌우로 흔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러나 그녀는 그 정도 위협에 기가 죽을 여자가 아니었다. 레이코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 생각에 후지라는 인물은 경찰의 감시가 삼언한 곳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밤이 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 거겠죠." "그렇군. 알겠어." 도시아키가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후지라는 놈, 은행 내부 사람이야. 그리고 네놈들의 길잡이 노릇을 했겠지. 하지만 경찰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내부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 후에도 관계자를 감시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그 감시망이 완화되어 빠져나올 기회가 생길 때까지 움직일 수 없는 거겠지." 다구가 도시아키 앞으로 가서 라이플을 들이댔다. 몹시 낭패한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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