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모조 레이코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이제 됐어요. 모든 걸 알았으니까요." "알았다고?" 도시아키가 소리를 내질렀다. "방금 나눈 대화로 범인을 알아냈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전부 제가 추리한 그대로 였어요." "좋아, 이거 흥미롭군, 그럼 이제 얘기해 봐. 누가 범인이지?" 진이 윽박질렀지만 레이코는 짐짓 딴청을 부렸다. "그러기 전에 이 가리개만이라도 풀어 줄 수 없을까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하는 수 없지. 다구, 전원의 눈가리개를 풀어 줘." 눈가리개를 벗겨 내자 희미한 빛에도 눈이 부셔서 다카유키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카유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아키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후지는 2층에 있어. 얼굴을 보일 수 없으니까 말이지." "본다고 해도 경찰에는 말하지 않을 거야." 도시아키가 말했다. "그런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지. 아무튼 빨리 시작해보라고." 진의 재촉에 모두들 시모조 레이코를 주목했다. 그녀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제가 그사람을 의심하게 된 계기는 예의 SOS란 글자가 지워진 것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SOS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는 화장실에서 호스로 물을 뿌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누구나 가능했다고 할 수 있죠. 다만 거기에는 이런 문제가 남습니다. 화장실 창문 바로 밑에 SOS 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는 것을 그 인물이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것이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와 다카유키 씨뿐이었는데 우리 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창문을 내다봤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겠지." 레이코의 우희적인 말투가 답답하다는 듯 진이 말했다. "아니요. 그럴 리는 없어요. 창문 바로 아래였기 때문에 화장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내가 그런 곳에다 썼으니까." 헉, 하고 모두들 숨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다카유키도 그것까지는 몰랐다. "그렇다면......" 도시아키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다카유키에게 쏠렸다. "아니요. 다카유키 씨는 아니에요. 글자가 지워졌다는 걸 제게 알려 준 사람이 바로 다카유키 씨였으니까요. 만약 다카유키 씨가 지웠다면 아무 말도 안 했겠죠." 그럼 얘기가 모순되잖아. SOS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둘뿐이었다면서." "네, 그러니까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거죠." "어떻게 발견했단 말이야.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진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화장실 창문에서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2층 창문에서는 보였을 겁니다." "2층?" 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리 없지. 지금 들은 바로는 그 SOS가 어쩌고 할 때는 모두 1층에 있었잖아. 2층에 올라간 자는 한 명도 없었어." "아니요. 딱 한 사람 있었습니다." "누구야, 그게?" 시모조 레이코는 천천히 눈을 움직여 한 인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모리사키 사장님입니다." "뭐야? 그럴 리가......." 도시아키의 눈에 핏발이 섰다. 노부히코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비스듬히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억하시나요? 사장님은 사모님이 걸칠 것을 가져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아마 그때 창문으로 우연히 그 글자를 본거겠죠." "그렇군. 이 인간이 그때 창문으로 바깥을 내려다 본거야. 틀림없어."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다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노부히코를 따라 같이 간 자는 다구였다. 노부히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직한 비서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 일로 나를 범인 취급 하려는 건가." "아니에요. 다만 그것이 제가 사장님을 의심하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쉽군. 자네에게 이런 의심을 사게 되다니." 노부히코는 대담한 미소를 띠고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타이머가 망가졌던 일까지 감안하면 사장님이 범인일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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