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야 그녀가 '죄는 같다'고 한 말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자, 이제 유키에가 아닌 인물 X를 상정해 보자고. X는 도모미의 목숨을 노렸어. 그 방법으로는 수면제를 바꿔치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도모미는 그날, 약이 든 필 케이스를 목에 걸고 교회로 갔고, 돌아오는 길에 유키에를 만났어. 우연히 만났는지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네." 아마 사전에 약속을 했겠지. 하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때 도모미는 유키에 앞에서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나 싶어. 물론 도모미는 진통제를 먹으려 한 것이지. 그런데 유키에는 그 약이 수면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즉, 유키에는 누군가가 도모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던 거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게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 "어떻게 짐작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게 아마." 노부히코는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유키에에게 아주 소중한 인물이었겠지. 그래서 도모미의 죽음을 알았을 때 그녀는 우선적으로 필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약이 수면제였다는 것을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유품을 봤을 때 남몰래 약을 채워 놓았지. 그러니 죽어 가면서 '죄는 같다'고 말한 것 아니겠나." 그랬었군. 다카유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당치도 않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이렇게 된 이상 도망 다닐 수는 없지. 경찰에 자수하겠네. 죗값을 치러야지." "하지만 유키에 씨 살인은 강도들에게 죄를 덮어씌울 수 있잖아요. 죗값을 치르더라도 자수는 하지 않는 편이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노부히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할 수 없네. 유키에가 도모미를 죽였다면 놈들에게 죄를 덮어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아직 모르는 거 아닙니까. 정말 유키에 씨가 도모미를 살해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아니, 그렇지 않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네. 유키에는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성품이 아니야. 무엇보다 그 일기장 조각을 보면 알 수 있잖나. 내가 여기로 돌아온 것은 그게 가장 큰 목적이었네." 노부히코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갈 생각인 듯했다. 다카유키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이러시면 놈들에게 들킵니다." "상관없어. 사정을 다 털어놓을 생각이네. 이 손 놓게나." "그럴 수는 없어요." 다카유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 안에서 무언가 거무스름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놓아 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고?" 노부히코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다카유키의 두 손이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도모미가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와의 결혼에 망설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그날, 그러니까 밸런타인데이 다음 날 유키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사랑 고백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도모미에 대한 다카유키의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키에를 처음 만났을 때 다카유키는 그녀의 매력에 강렬하게 끌렸다. 그녀의 순수함, 솔직함, 사랑스러움이 그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녀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척 외면한 것이다. 그런데도 도모미가 공연을 보러 같이 가자고 해서 만나게 되면 다카유키는 도모미와 단둘이 있을 때와는 다른 설렘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유키에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분명하게 본인의 입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도모미를 행복하게 해 달라, 절대 슬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해 달라,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다카유키의 마음은 오히려 불타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든 유키에와 맺어지고 싶었다. 도모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약혼을 파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난을 감수할 각오로 다카유키가 제 입으로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한 가지는 도모미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하더라도 유키에와 결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도 용납하지 않겠지만, 유키에의 성품으로 보아 다카유키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또 한 가지는 다카유키의 회사가 노부히코의 지원 덕분에 성장했다는 점이었다. 지금 와서 노부히코를 배신한다면 앞날이 힘들어질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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